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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임의 역사: 조선일보에서 퍼온 글입니다.

    2003-11-03조회수 5,630

    한성식
    5,630
    제목

    피임의 역사: 조선일보에서 퍼온 글입니다.

    작성일
    2003.11.03
    작성자
    한성식
    조회수
    5,630

    본문

    20세기 초에는 ‘산아제한’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내는 것 자체가 금기였다. 이 금기를 처음 깬 사람이 마거릿 생어다.

    11자녀 중 6번째로 태어난 생어가 어머니에 대해 갖고 있는 기억은 언제나 배부른 모습뿐이었다. 결국 48세에 숨진 어머니를 통해 잦은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건강에 끼치는 폐해를 깨달은 생어는 간호사가 돼 피임법의 전도사가 된다. ‘산아제한(birth control)’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도 생어였다.

    1914년 3월에 발간된 잡지 ‘여성 반란’은 산아제한운동의 신호탄이었다. 그는 잡지에서 “여성 자신이 육체의 주인”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러나 잡지는 우송 불가물로 판정받고 곧 폐간됐다. 1916년 10월 16일, 생어는 미국 최초의 ‘산아제한클리닉’을 뉴욕 브루클린에 개소했다. 464명이나 다녀갈 정도로 여성들이 큰 관심을 보이자 열흘째 되는 날 경찰이 들이닥쳤다.

    생어는 재판에서 30일간의 강제노동 판결을 받았지만 “여성에게 피임기구를 제공할 권한을 의사에게 준다”는 판결을 이끌어내 산아제한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1936년에 “의사들이 피임약을 처방할 수 있다”는 연방법원의 판결을 받아낸 것도, 1937년에 미국의학협회가 “의과대에서 피임에 관한 강의를 할 수 있다”는 결의를 끌어낸 것도 생어의 길고 긴 투쟁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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